1 · 21사태 1 · 21사건은
북한 소속 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
김신조 사건이라 부르기도 한다.
=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한·미·일 체제가 완성되고,
베트남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일성이 북베트남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계획한 사건이다.
그들의 목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미 대사관 공격 및 요인 암살,
국방부 공격 및 요인암살,
교도소 공격 후 죄수 석방,
반정부 세력의 의거 유도였다.
1월 13일 정찰국장에게 지령받은
124부대원 31명이 17일부터 침투를 시작한다.
당시 허점이 너무나 많았던
남방한계선을 쉽게 돌파하고
19일 파주시의 한 야산에서
우연히 나무꾼 우 씨 4형제를 만나게 된다.
나무꾼들을 북에 무전을 쳐
어떻게 할지 물어봤지만
그들은 회신 된 암호를 풀지 못했고
(나중에 밝혀지기로 복귀하라는 명령이라 한다)
투표를 통해 나무꾼들을 살려주기로 하고
신고하면 가족들을 몰살시키겠다는
엄포와 함께 그들을 풀어주었다.
당연하게도 나무꾼들의 가족이
파출소로 신고하게 되고
파출소에서 경찰서를 거쳐
국군, 미군에 알려지며
즉각적인 경계 태세가 발령되었다.
국군은 유류품과 비트를 발견하고
발언의 신뢰성을 확인한 뒤
이들이 서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미군 경계 지역에 대한 작전권까지 이양받으며
신속하게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다.
하지만 국군이 예상한 속도보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차단선을 빠져나왔다.
빠른 속도로 국군을 따돌렸지만
결국 자하문(창의문) 초소에서
종로경찰서 소속 형사 2명에게 검문받게 된다.
"CIC 소속 대원이다.
특수훈련을 마치고
복귀 중인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당연히 이런 소식을 들었을 리 없던
형사들은 계속 추궁했고
무전으로 연락받은
국군과 경찰 병력이 그들의 진군을 막아섰다.
이때 우연히 시내버스 2대가
길을 따라 올라왔고
군의 지원 병력으로 오인한 124 부대원들은
경찰 병력자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올라오던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던진 뒤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최규식 총경은
전사하고 많은 경찰이 상처를 입고
수류탄을 맞은 시내버스 안
민간인 4명이 사망하게 된다.
그 뒤 크고 작은 전투는 계속되어
29명이 사살되고
1명이 투항,
1명은 북으로 귀환했다.
도주 과정에서 무차별 폭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총 32명 사망(장병 25명, 민간인 7명),
52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결국 군경합동 수색 작전을 통해
31일에 사건이 마무리된다.
그중 투항한 김신조 소위의 경우,
상당한 교전을 주고받다가
"나오면 살려준다"라는 회유에
손들고 나왔다고 한다.
국방부 공식 기록에는 '생포',
이후에는 투항, 자수라 불리고 있다.
결국 김신조는 귀순하여
개신교교회 성락교회에서 목사 활동을 하다
개명신청을 통해
김재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예비군과 5분대기조,
3사관학교, 유격훈련, 전투경찰 순경 등이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 만들어지게 된다.
허술하게 뚫려버린
남방한계선의 경계 허점을 보완하고
학교에서는 교련 실습이 시작되어
1994년까지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었다.
주민등록번호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간단한 순자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성별 및 생년월일, 출생신고를
한 읍 · 면 · 동사무소의 고유번호,
해당 지역에서 출생신고를
한 당일의 접수 순번 등으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영화 [실미도]의 모티브가 되는
684부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응징보복 목적의 부대로
영화에서 그려진 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자원한 부대라고 한다.
하지만 '남북공동성명'이라는 흐름 앞에
사라지게 되었다.
경기도 양주시부터
서울 강북구 우이동까지 북한산 자락을 잇는
6.8km의 우이령길이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2010년 2월 27일, 41년 만에 민간에 개방되며
현재는 서울 북악산에 소재하고 있는
'김신조 루트'는 산책 코스로 개발되어 있다.
아직도 완전 개방은 아니며
예약을 통해서 입장해야 하고
하루 입장 인원도 정해져 있는 일부 개방이다.
끝으로 124부대원들이 인왕산에 숨었을 때,
등산객들이 '야호'라 외치는 것을 듣고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었다고
판단해 벌벌 떨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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