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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며

by 류군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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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학번으로 입학한 내가 오랜 시간 끝에 오는 2월 졸업하게 되었다.

군 휴학 2, 일반휴학 1번까지 포함된 약 7년간의 대학 생활이 드디어 끝나게 되니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뭐 그런 많은 생각이 든다.

 

길고 길었던 대학 생활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다 모으면 50만 원어치는 될 전공 서적들일까.

아니면 친구들과 남긴 추억들일까.

그것도 아니면 특별한 의미 없는 졸업장일까.

 

사실 대학 생활이 남긴 것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졸린 상태로 겨우 출석했던 1교시에도

창문 밖 풍경에만 집중했던 교양수업에도

돌이켜보면 항상 배운 것들뿐이었다.

맞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공부하고 배우는 곳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배운 것들은 교수님에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역사교육과를 나왔다.

중등교사 선발시험, 속칭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과로

4학년 1학기에는 낯선 정장을 입고 교생실습도 다녀왔다.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학과처럼 역사 관련 전공 수업들이 주를 이루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전공 수업들도 수강해야 하고

교직 과목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학과이다.

 

나는 교직 과목이 정말 싫었던 것 같다.

우리 학과뿐만 아니라 사범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교양 과목 대신 교직 과목으로 학점을 채워야 했는데,

차라리 재미없는 교양 과목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정말 이론 그 자체인 내용에

개인적으로 교육 사회같은 과목은

정말 차별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에서 만날 수 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과목이

자신이 굉장히 열린 사람이라 생각하는 편협한 교수를 통해 다뤄지니 정말 차별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역사교육과가 좋았다.

누가 왜 역사교육과에 왔냐 물어보면 귀찮아서 점수 맞춰서 왔다 했지만

사실 좋아서 선택한 학과였다.

3 당시 받은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역사교육과를 찾아

대학을 선택했고 그렇게 입학해 졸업까지 했다.

교직 과목은 정말 싫었지만

전공과목은 정말 좋았다.

역사라는 전공은 사실 반복의 반복이다.

고등학교 수준의 한국사, 세계사 지식을 알고 있다면

수업 따라가기도 수월하고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해박한 전공 지식은 늘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교는

전공과목, 교직 과목, 교양 과목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속칭 대학 생활이 남아있다.

 

내가 대학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바로 부조리였다.

군대에서 배워도 늦지 않을 부조리를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배웠다.

우리 학과는 정말 안 좋은 전통이 많은 학과였다.

흔히 말하는 똥군기학과로

지금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나무위키에도

똥군기학과로 등재되었던 것 같다.

 

오랜 기억이지만 16년도 신입생 환영회 날에

학회장 선배가 강의실 앞에 나와

1학년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들에 관해 설명해준 기억이 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멍청한 규칙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슬리퍼 금지, 운동복 금지, 반바지 금지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이 멍청한 규칙들을 꽤 지켰던 것 같고

안 지키는 몇몇 동기들 때문에 집합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몇 년이 지나도 당시에 함께 했던

동기들과 만나면 저 때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음으로 배운 것은 여행이었다.

역사교육과는 역사 전공인 학과이기 때문에

, 가을마다 답사를 가곤 했다.

내가 저학년일 당시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필수였고

낮에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수많은 유적지를 방문하고

저녁에는 술자리가 있었다.

대부분 학우는 답사를 사교의 장’, ‘친목 도모의 성지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술자리를 정말 싫어한다.

돌이켜보면 술은 어찌나 그렇게 많이 마시는지

항상 숙취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버스에 남겨진 선배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러한 뒤틀린 사교의 장에서 나는 여행을 배웠다.

사실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부조리라서

대학에서 배운 것이 안 좋은 것뿐이라는 뉘앙스를 보이긴 했지만

대학은 나에게 긍정적인 것도 많이 남겼다.

여행은 사람들이 꿈꾸는 일이면서 대부분 좋아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행은 항상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하고

한정된 시간과 돈 때문에 많은 고민을 수반한다.

 

나는 여행을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계획하고 설계해서

완벽히 맞아떨어지면 그렇게 재밌던 것 같다.

몇 번의 답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관광버스 3대에 이르는 단체 여행객을 이끌 계획과

수많은 유적지를 거쳐야 하는 동선을 보며

답사에서 여행을 배웠던 것 같다.

집단 지성의 놀라움일지

학과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최적의 루트일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계획과 동선은 나를 놀라게 했고 배우게 했다.

 

그리고 대학은 나에게 경험을 주었다.

나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답사에 갈 때마다 하던 장기자랑에도 나간 적 없었다.

그런 나에게도 대학은 3번 정도의 경험을 주었다.

 

첫 번째 경험은 1학년 때였다.

안 좋은 전통은 나를 경험하게 했다.

1학년은 좋든 싫든 학과의 대표로 청사 전야제에 참석해야 했다.

청사 전야제는 청사제라는 체육대회 전날 열리는 행사였는데

학과별로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했다.

보통 그룹을 나눠 춤을 췄던 것 같다.

1학년 2학기의 공강 시간과 하교 후 시간을 모조리 투자해

나와 내 동기들은 EXO중독이란 노래의 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산 싸구려 검정 슈트를 입고

무대에 올라 연습한 성과를 모두에게 보여줬다.

현장 반응은 좋았던 것 같은데 전역하고

여자 동기들이 찍어둔 그 날의 영상을 다시 보니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 경험은 전역한 이후 2학년 때였다.

전역한 후 학교에 복학하니

아는 사람은 복학한 친구들뿐이었다.

말 그대로 복학생이 되어버린 나는

전역을 버프 삼아 열심히 공부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자 나는 과대표가 되었다.

사실 우리 과에서 과대표는 그렇게 힘든 자리가 아니었다.

단순히 카톡으로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대표로 과제물을 취합하는 정도로 가벼운 잡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문제의 사교의 장’, 답사가 찾아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전역 후 모두 사라진 줄 알았던 안 좋은 전통은

또다시 나를 경험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2학년 과대표가

사교의 장이자 친목 도모의 성지의 하이라이트인

장기자랑의 사회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정도 해보고 화도 내보았지만 안 좋은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학회장이 갑자기 아파서 장기자랑 전

레크레이션까지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준비는커녕 시작 5분 전에 알려준 절망적인 소식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까짓것 광대 한번 돼준다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올랐고

무사히 레크레이션과 장기자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경험이었다.

 

세 번째 경험은 4학년 2학기로 유일한 자발적인 경험이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내내 자발적인 행사 참여는 없었기 때문에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바로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일본 속 한민족사 탐방이라는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에 45일 다녀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여행으로는 가기 힘든 지역까지 답사할 기회였기에

사교의 장에서도 여행을 배우는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렇게 지원을 했고 과에서 대표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일정이 꼬여 기말고사 기간에 출발해 과제 대체나 추가 시험으로 학점은 포기해야 했지만

어쩌면 대학 생활 중 가장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 생활 중에

무대에서 춤도 춰보고

레크레이션과 장기자랑 진행도 해봤으며

학교 대표로 일본 답사에도 참여했다.

어쩌면 나는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을 한 셈일지 모른다.

역사를 배웠고, 부조리도 배웠고, 여행도 배웠고, 경험도 했고

대학 생활은 많은 것을 내게 남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학교가 가진 가장 큰 역할은 세계관의 확장이라 생각한다.

 

나는 군대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사람들을 여기 아니면 언제 만나보나.’

나이, 학연, 지연 상관없이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곳이 군대다.

그리고 연고 없는 먼 곳에서 복무하다 보니

나는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전역하고 나는 대학교 역시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초중고는 집 인근에서 다니기 마련이다.

대학교 역시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집에서 먼 대학에 다니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내가 살던 세계

한층 넓어져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한, 만나게 되는 사람 역시 확장되어 동기, 선배, 후배, 교수님 등등

기존에 초중고 친구들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 같다.

대학교도 결국은 학교인 셈이다.

 

이렇게 세계관이 확장되니

나서기 싫어 아무것도 참여하지 않았던 나조차

무대에서 춤도 추게 되고

레크레이션과 장기자랑 진행도 하게 되고

학교 대표로 일본 답사도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20살에 설레는 마음으로 신입생 환영회에 가던 내가

어느새 27살에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많은 강의, 시험 그리고 기억들

누군가에게 그저 이력서의 한 줄에 불과할 대학교가

나에게는 추억이 되어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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