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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역사

[역사] 좁은 유럽을 넘어 넓은 세계로, 신항로 개척

by 류군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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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개척

인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바다로 나가기 시작한 시기를 말한다.

영어로 'Age of Discovery'

직역하자면 '발견의 시대'인데

유럽인들의 시각에서는 발견이지만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피해국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의 유입이기 때문에

현재에는 중립적인 표현인

신항로 개척이라 표현되고 있다.

 

서로 존재조차 모르던
전 세계의 문명권들이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시작
신항로 개척

이 시기를 모티브로 한 게임  [대항해시대]

 

신항로 개척 시기는

'대항해시대'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大航海時代(다이코우카이지다이)'

중역하면서 나오게 된 말이라고 한다.

중립적으로 신항로 개척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지만

'대항해시대'라는 단어가 풍기는

특유의 모험과 낭만은 매력적인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만화 [원피스] 등 많은 작품에서

이 시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신항로 개척 시기의 시작점은

향신료, 그중에서도 후추였다.

향신료가 고가의 사치품 취급을 받았던

당시의 유럽에서는

특정 국가들만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독점적인 중개무역 형태로

향신료 무역이 진행되었다.

인도-아라비아-콘스탄티노플-베네치아를 거쳐

가격은 천정부지 뛰어올랐고

이득을 보지 못하고

비싼 값에 향신료를

사고 있던 나라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치품, 귀중품 취급을 받던 향신료는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물건으로 바뀌어 버렸다.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리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유럽 지중해 국가들의

해상무역권을 고스란히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 값비싼 향신료의 가격은

끝을 모르고 오르게 되었다.


 

지중해, 북해, 발트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던 유럽의 최변방 포르투갈은

농지도 척박하고 인구도 적어

상업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업 부르주아 세력이 후원한

아비스 왕조가 들어선 이후로

포르투갈이 갈 수 있던 유일한 루트,

대서양을 통해

아프리카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포르투갈과 달리 스페인은

베네치아, 제노바와 함께

지중해 3대 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던 스페인 입장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성장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라곤 강국과

카스타냐의 국왕 간의 결혼으로

이제 막 탄생한 스페인은

빼앗긴 지중해를 되찾던가,

새로운 무역 루트를 찾는 방법밖엔 없었고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쪽으로 남하하자

스페인은 서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작은 바다인 지중해에서만

활동하던 유럽인들에게

긴 항해는 낯선 일이었다.

원양항해에 대한 지식, 기술은

먼바다에 나가기에는 부족했고

중국, 인도에 대해

듣기만 했지 지식은 없었다.

과거 이슬람과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나침반, 사분의, 아스트롤라베 등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게 도와주었고

이윽고 항해술은 급속도로 발전해서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에 도착하거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신대륙에 도착하게 해주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와 희망봉

 

포르투갈은 1415년부터

아프리카로 남하하기 시작하여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이끄는 3척의 선박이

1488년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

유럽인 최초로 도착한다.

커다란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유럽인들에게 주었고

디아스의 모험담을 들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에 의해

희망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콜럼버스

 

1492년에는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카리브 제도의 바하마에 상륙했다.

지구는 둥글 테니 계속 항해하면

언젠가 중국과 인도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은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영국,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다가

스페인의 이사벨 1세의 후원으로 모험에 떠나

3달간의 항해 끝에

바하마 제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몇 명의 원주민을 납치해

본국으로 돌아와

미지의 신대륙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신항로 개척이 시작되었다.


바스코 다가마

 

인도로의 항로를 개척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1498년에 바스쿠 다가마가 이끄는 선단이

아프리카를 돌아

꿈에 그리던 인도에 도달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항로가 활용되어

인도와 직접 교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과들로 무역의 판도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게 됬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새로운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자,

북해의 영국과 네덜란드, 대륙의 프랑스도

이에 동참하게 된다.

몇 차례의 분쟁, 전쟁을 통해

앞선 두 나라의 영토와 이권을 빼앗고

본격적으로

범세계적인 무역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영국,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설치하고

국제 해상무역의 중심이 되었고

프랑스는 퀘벡 같은

식민지 개척에 중점을 두었다.


 

수십 년에 걸친 모험과 개척으로

대부분의 지역에 대해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신항로 개척은 끝나게 된다.

이제는 바다를 벗어나

내륙 탐험과 정복이 시작된다.

신항로 개척으로 인한

막대한 부는 유럽인들이 다른 세계에 비해

발전했다는 우월감을 주었고

이런 흐름은 제국주의를 만들게 된다.


 

'모험과 개척'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식량은

비스킷, 염장 고기, 나무통에 든 물이 전부였다.

비스킷은 돌처럼 딱딱했고

곰팡이가 피는 일은 당연했다.

나무통에 든 물은 점점 썩어갔고,

배 안의 쥐들은 비스킷을 갉아먹고

물통 안에 빠져 죽는 일도 잦았다.


 

당연히 배 위는 질병에도 취약했다.

당시의 위생관념상

질병의 확산은 막을 수 없었고

많은 선원이 괴혈병으로 고생하고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다.

18세기에 들어서야 절인 양배추를

이용해 괴혈병이 줄기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에 강력한 규율도 있었다.

선원들의 반항심을 없애기 위해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규정을 만들어

채찍으로 처벌했다.

채찍을 맞다가 죽는 선원도

있을 정도로 혹독했다고 전해진다.


 

더 많은 암울한 상황들이 있지만

이들을 바다로 나가게 한 것은

평생 얻을까 말까 한 막대한 돈이었다.

열악한 환경을 버텨서

인도나 아메리카에서

교역품을 싣고 돌아오면

선장은 물론 말단 선원들까지

모두 인생이 역전되었다.


 

어찌 보면 향신료, 돈 때문에 시작된

신항로 개척은 큰 변화를 만들었다.

감자, 고구마, 초콜릿, 담배, 고무, 고추 등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온

작물과 원료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역사를 바꿔 놓았다.

현대 문명과 문화를 선도하는 미국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도 신항로 개척이고,

유럽의 막대한 금·은의 유입과 경제 발전은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유럽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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